지금 북한에선, 독재자의 향락 그 끝

북한 외교부의 비참한 죽음

김씨 일가 향락의 제물

김태봉 기자

작성 2020.08.05 21:30 수정 2020.08.09 10:26

독재자의 향락으로 인해 비참한 죽음을 당한 사건이 북한에서 벌어졌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북한 외교부에서의 일이다. 폐쇄된 북한 사회의 특징상 외부로 알려지지않았던 사건으로 북한 외교관의 10%가 넘는 외교관이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몰려도 이 사실이 알려지지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건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게되었다. 탈북한 세명의 전직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부터 교차 확인한 사항으로 주성하 탈북 기자로부터 밝혀진 내용이다.

 

평양 보통강 구역 신원동에 보통강을 끼고 평양제1고등중학교라는 북한에서는 최고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가 있다. 그런데 이 학교터에 150여명의 억울한 영혼이 잠들어있다고 전했다. 원래 이 자리는 1고등중학교가 들어서기전 사회안전성 병원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이 김정일 집무실인 중앙당 청사와도 멀지않은 곳이어서 노른자위 땅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권력을 잡은 김정일은 전국 각지에 김씨 일가 전용 특각을 짓고 기쁨조 선발을 시작하는 등 , 향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이때 이 특각을 짓고 여성을 섬겨 바치는 일을 담당하며 김정일의 눈에 들기위해 애을 쓴 자가 바로 장성택이었다.

 

장성택은 사회안전성 병원터 자리를 눈여겨보고 있다 1970년대 말 병원을 옮기고 이곳에 김정일을 위한 전용 수족관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평양시민들을 위한 수족관이 아닌 김정일을 위한 전용 수족관이었던 것이다. 당시 김정일 전용 특각을 담당하여 건설하는 제1공병총국 과 같은 전문 부대가 없던 상태에서 수족관 건설에는 외교부 각 부처에서 선발된 인원들과 재외 대기자들이 동원됐다고 전했다.

 

재외 대기자란 해외 발령을 앞두고 있거나 해외 공관에서 귀국해서 당 생활총화하는 인원들로서 수족관 건설에 약 60여명 정도가 동원됐다고 전했다.1979년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일이 지연되자 외교관들은 주야동원되어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다 한 겨울에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합선에 의한 사고로 현장은 삽시간에 불이 번져 모두 타버렸다. 북한의 특성상 화재 현장에서는 사람이 먼저 대피하게되면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예로 가정에서 불이나면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우선으로 떼어 가지고 나와야한다.그런 북한에서 김정일 전용 건물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현장에서 대피하지않고 건물내 한점의 물건이라도 가져나오려하다 또 다시 폭발이 일어났고 이 사고로 150여 명이 사망한 일이 발생했으나 이 사실은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않았다.

 

당시 150여명의 일꾼은 모두 외교관 출신으로 당시 북한 외교 인력의 10%가 넘는 숫자였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북한은 이 사건을 철저하게 은폐했다. 사망자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고 이 세 탈북 외교관리들은 전했다.

오직 애국열사증이란 증서하나가 전부였던 것이다. 북한에는 보험이란 제도 자체가 없어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단지 외교부 초대소나 행정 부처에서 사망자 배우자나 가족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서 1980년대 초반 외교부에는 과부들이 많았다고 전하고 있다. 숱한 인명이 죽은 이 자리에 수족관 건설은 중단됐고 대신 1984년 평양1고등중학교가 들어섰던 것이다.이곳은 북한 최고 수재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외국 여행객들의 참관도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직 유망 외교관들의 영혼이 묻혀있는 자리에 북한 최고 고등중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자리는 다름아닌 북한 김정일의 전용 수족관이 지어질 예정이었던 곳 즉 김씨 일가의 향락을 위해 지어지려했고 이 일을 위해 노력 동원되었다가 희생된 많은 혼령들의 탄식이 묻혀있는 역사적인 아이러니의 장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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